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게 아니랬다. 한 번 끝난 인연을 억지로 이어붙이면 추억은커녕 피로만 남는다. ENA·SBS Plus의 연애 리얼리티 예능 '지지고 볶는 여행'(이하 '지볶행')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싸늘한 반응을 마주하고 있다.
인기 프로그램 '나는 SOLO(나는 솔로)'의 세계관을 확장한다며 야심차게 선보인 '지볶행'은 과거 출연자들을 해외 여행이라는 낯선 공간에 보내놓고, 또 한 번 감정의 소용돌이를 유도하는 구조다.
지난달 28일 첫 방송된 '지볶행'에는 '나는 솔로'와 스핀오프 '나솔사계'를 통해 갈등과 오해를 충분히 보여줬던 인물들이 출연중이다. 10기 영수·정숙, 9기 옥순·남자 4호, 22기 영수·영숙이 그 주인공이다. 10기 영수·정숙은 "손선풍기 없어?", "언성 낮추세요" 등의 유행어를 남긴 대표적 갈등 캐릭터였고, 9기 옥순은 돌직구 화법과 감정 기복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22기 영수·영숙 역시 종교와 성격 차이로 끊임없이 부딪히는 커플로 회자됐다.
'지볶행'은 여행지에서 출연자들을 한 공간에 묶어두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의 감정 교류와 충돌을 담는다. 하지만 이 구조는 사랑보다는 불편한 감정의 재생산에 집중된 모양새다. 여행이라는 낭만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은 사랑의 회복이 아닌, 과거 갈등의 반복과 피로한 설전들뿐이다.
'나는 SOLO'가 초기에 보여줬던 진정성은 낯선 사람들이 서툴게 마음을 열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었다. 반면 '지볶행'은 이미 엇갈린 인연의 말다툼을 다시 끄집어내고, 감정의 밑바닥까지 소환하려는 연출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연애 예능이 아니라, 감정 소모 관찰 예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시청자 반응도 냉담하다. "그만 좀 우려먹어요, "이젠 그만 좀 봤으면" 등의 의견이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반복되고 있다.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보다 깨지고 멀어지는 감정만 보여주면서 프로그램의 본래 의도였던 '사랑과 인생의 여정'이라는 메시지는 흐릿해지고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미 캐릭터성이 확인된 출연자들을 통해 강한 서사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선이 시청자에게 너무 낯익고 소모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박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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